슬프디 슬픈 이야기다. 여태 살던 대로 살다가, 이 상태로 죽게 될 줄 알았는데, 사람인 지라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에 흔들리게 됐다. 결코 다가설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세계를 살짝 엿보게 된 댓가로 가족을 잃고 완전히 혼자가 됐다. 96년생, 올해 스물이 된 일영은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엄마’가 됐지만 그녀를 아끼고 염려하는 가족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열 살이 될 때까지 거지들 사이에서 자랐고, 그 다음은 앵벌이를 했으며, 이후엔 ‘엄마’ 품에서 폭행, 협박, 살인, 장기밀매 등 살기등등한 세계에서 살아온 일영. 재떨이를 휘둘러 남의 얼굴을 뭉개고 도박빚으로 협박하고 장기밀매 뒤처리 등등 험악한 범죄는 그녀에게 그저 일상이다. 아무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는 그녀에게 어느날 자신의 세계와 동떨어진 인물이 나타난다.

빚 받으러온 일영에게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쓰고 존대말을 하며, 처음 보는 그녀에게 식사를 권하다못해 파스타를 만들어주고,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려주는 ‘친절한’ 석현. 석현 같은 홍안의 미소년의 친절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반할 것이다. ‘친절’이란 단어조차 생경스러운 일영의 경우라면 더욱 더, 면역력 조차 없는 그녀는 흔들린다. 나에게 친절한 유일한 사람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지는 건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법한 마음이다. 그는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나 친절할 사람이란 걸 알아도. 석현의 친절과 가족을 믿는 순진함은 칼이나 들고 다니는 일영이 꽃무늬 원피스를 택할 정도로 여심마저 자극한다. 정말 그에게 뭔가 기대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없는, 그가 가진 친절한 미소와 밝은 미래가 계속 펼쳐지기를 바란 것 뿐.

일영의 마음이 아프게 와닿은 건 석현이 근무하는 레스토랑을 찾아갔을 때의 장면이다. 일영의 세계는 날 때부터 스무살이 되기까지, ‘고급’이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기보다 몇배의 덩치큰 남자들도 제압하는 깡을 가진 일영이지만 난생 처음 보는 고급 레스토랑의 럭셔리한 분위기와 지나치게 정중한 대우 앞에서 오히려 주눅이 든다. 구질구질하고 너저분한 환경과 거친 폭력과 언사만 보고 자란 일영에게는 차라리 지옥이 더 편하다.

그렇게 남의 눈물을 쥐어짜고 피를 보고 목숨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뺏는데, 일영을 비롯한 가족들의 주식은 짜장면이다. 요리가 나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짜장면이다. 어쩌다 한끼는 밥을 먹었을 지도 모르지만 알 수가 없다. 짜장면 외엔 다른 음식을 먹는 장면은 나오질 않았으니.

폭력성으로 따지면 다른 영화들도 만만치 않은데 <차이나타운>의 잔인성이 더 혹독한 평가를 받는 것도 여기에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한 거라더니, 사시미칼로 남의 목 따서 얻은 댓가가 고작 짜장면인가.

느와르 영화에 흔히 나오는 화려한 클럽 파티도, 고급 한정식이나 일식이 나오면 보는 입장에서 납득은 간다. 된장찌개만 먹는 삶보다는 한순간이라도 외제 스포츠카에 7성급 호텔에서 신나게 파티하는 화려한 삶을 누리는 것, 누구나 갖는 꿈이니까. 그러나 <차이나타운>에서는 그런 꿈도 사치다. 엄마 말을 안 듣고, 엄마가 하라는 거 안 하고, 그래서 쓸모없어지면, 그동안 먹은 짜장면 값 대신 각막과 신장, 심장, 기타등등 그야말로 몸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짜장면 대신 짬뽕 타령할 여유 따윈 없다.

비평가들의 호평과 관객들의 불평이 엇갈릴 만도 하다. 호에도 이유가 있고, 불호에도 이유가 있다. 너무 명백해서 양쪽의 입장이 이해간다. 그러나 제작사의 ‘언플’이라고 매도되기엔 아까운 영화다. 또 한 가지의 장점, <차이나타운>의 젊은 배우들의 재능이 놀랍다. 차세대 영화계를 이끌 수 있는 좋은 배우들의 활약으로, 이제 영화계도 세대교체의 시기가 온 것 같다.

김민정 기자  aeonc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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