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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술 인문학] 초현실주의 미술의 탄생과 사진
글 / 편집장 신현국

 

세계 1차 대전 말에 나타난 다다이즘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진취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시작된다. 그들은 19세기 과학문명과 문화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기성의 전통과 질서에 대한 파괴를 표명한다. 이처럼 다다이즘은 하나의 예술적 양식이라기보다는 기존 가치에 대한 부정과 반항으로부터 출발했다.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전후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다다를 주도한다. 하지만 다다이즘은 순수예술파와 공산주의간의 내부 분열로 지속성을 잃고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인 ‘제1선언’을 통해 비현실적, 비이성적 초현실주의를 새로운 예술개념으로 제시한다. 초현실주의의 등장은 공간과 구성의 개념을 해체했다는 점에서 19세기 세잔에서 피카소로 이어지는 입체주의로부터 기원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부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으로 확고한 형태를 갖추고 발전하게 된다. 이후 초현실주의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인간 본질로 파악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 이론에 영향을 받아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환상예술적 경향을 보이며 문학과 영화, 회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초현실주의 선언은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및 선입견을 배제한 사고를 통해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이성과 관념을 떠나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행해지는 예술적 행위를 진실의 기록이라 하였으며 그러한 기법을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이라 했다. 즉 수면과 반수면의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본질로 규정한 것이다. 이들은 자동기술법을 통해 수면 깊숙이 잠재된 빙산처럼 인간의 본능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했다. 오토마티슴은 프로이트의 치료법인 자유연상법을 예술에 적용한 것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의 가장 핵심적인 기법이다. “의식은 무의식의 도구다”라고 했던 프로이트의 말처럼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을 표현하기위해 의식적인 도구를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초현실주의자들 중 자동기술법을 충실히 회화에 적용시킨 예술가 중 한사람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브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되기도 했지만 그의 천재적 재능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900년대 초에 파리로 건너간 달리는 앙드레 브르통, 르네 마그리트 등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만나 그의 예술적 영감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기억의 지속’은 친구들과 극장에 가기로 약속한 후 두통 때문에 집에 남아 있다가 우연히 그리게 된 그림이다. 일상적인 사물을 비이성적인 형태로 표현한 이 작품은 달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죽은 올리브 나뭇가지에 널린 녹아내린 시계와 죽음을 뜻하는 개미가 있는 회중시계를 통해 시간의 영속성은 보여준다. 마치 꿈속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달리는 “자신이 곧 초현실주의다.”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으며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전후 그는 고향인 스페인 피게레스로 건너와 폐 극장을 인수하고 달리박물관을 세웠다. 달리 박물관은 파리와 미국 등에도 있지만 피게레스의 달리 박물관은 그가 직접 구상하고 제작에 관여한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 달리 박물관은 그의 독창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늠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생전에 그는 ‘미친 화가’라고 불릴 만큼 기이한 행동과 작품을 남겼는데 달리는 “나의 정신상태는 이상하지 않으며 단지 정상이 아닐 뿐이다.”고 했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거장인 벨기에의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는 달리와는 다른 세계의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창조 한다. 그는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과 살바도르 달기 그리고 후안 미로 등의 초현실주의자들과 친교를 맺고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하지만 자동기술법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구보다는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초현실주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달리가 초현실적 형태에 주력했다면 마그리트는 사고를 통해 초현실적 이미지를 유도했다. 즉 그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고를 통해 관습적인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사물의 그림 속에 다른 이미지를 포함시키거나 언어와 이미지와의 관계를 뒤틀어 보여줌으로서 고정관념을 환기시킨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넣어져 있는데, 이는 대상과 이미지와의 관계를 전복시킴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미술에 대한 당혹감과 충격을 준다.

이러한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팝아트와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 ‘피레네의 성’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모티브가 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패러디된 것은 아마도 ‘겨울비’라는 작품일 것이다. 레인코트의 신사가 공중에서 비가 내리듯 내려오는 작품인데 이 작품 역시 영화 매트릭스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마그리트의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는 많은 작품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를 소개한다면 ‘통찰력’이란 작품이다. “알을 보면서 새를 그린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그림은 사물을 대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며, 마그리트가 우리에게 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20세기 초 다다이즘으로 시작된 현대미술의 경향은 사진에도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은 1924년경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만 레이(Man Ray)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영향으로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후 추상적 영상이미지인 레이오 그래프와 반전현상인 솔라리제이션 등 새로운 기법을 창조한다. 그의 대표작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여성누드의 뒷모습에 바이올린의 무늬를 결합한 초현실적 이미지다. 그는 1940년경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현대사진의 흐름을 주도하다 파리로 돌아와 사망한다. 그가 남긴 새로운 사진의 조류는 미국 현대 사진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의 작품 ‘선물’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도입한 작품으로 다소 도발적인 다다적 성격과 초현실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만 레이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초현실주의 사진가인 영국태생의 빌 브란트(Bill Brandt)는 파리에서 만 레이를 만나 초현실주의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만 레이와는 다른 신비감을 표출한다. 극단적인 원근법과 과장 그리고 왜곡을 통해 비현실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그의 사진집 ‘누드의 원근법’은 초광각 렌즈를 이용하여 인체를 다소 길게 또는 세부만 왜곡된 형태로 묘사하여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평범한 사물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게 하는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나영균 기자  siss477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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