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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술 인문학] 20세기 미술의 시작 ‘레디메이드’
편집장 / 신현국

 20세기 미술은 고전주의 미술의 전통적인 양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전위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르네상스시대부터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균형과 비례의 조형문법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리타분하게 여겨졌다. 20세기 전반의 미술은 서구문명에서 벗어난 자연주의적 성향의 표현주의와 야수파, 입체파 등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문화적 탐구가 반영된 원시주의 미술이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절대적 가치로 여겨진 원근법의 파괴와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탈피한 야수파와 다시점 이론을 수용한 입체파는 19세기 미술의 가치를 거부한 대표적 양식이다. 표현주의 미술에 나타나는 주관적 감정표현 역시 낭만주의와 후기인상파에서 보여 지는 작가의 감정을 더욱 과감하게 드러낸다.

뭉크의 절규는 들라크루와의 색채보다 강렬하고, 고흐의 붓놀림보다 혼란스럽다. 20세기 미술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 꽃을 피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기획한 현대미술전 이후 미국은 유럽의 새로운 미술에 대한 반감과 동경이 교차하며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가운데 뒤샹(Marcel Duchamp)은 1913년 아모리 쇼에 출품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미래파 회화를 선보인다. 이 그림은 카메라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카메라로 연속해서 찍은 후 그린 그림으로 각각의 장면이 겹치면서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이는 착각이 들게 한다. 뒤샹은 1912년 프랑스 전시회에서 거부당하자 미국에서 전시하게 되는데 회화보다 조형성이 강조된 이 작품은 미국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이 보다 4년 후인 1917년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에서 주최한 전시회에서 뒤샹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술계의 질서를 뒤바꾸며 현대미술을 새롭게 정의한다.

 뒤샹은 뉴욕의 철물점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상품명을 본뜬 ‘R, Mutt'란 가명에 ‘샘’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한다. 뒤샹은 기존 예술세계에 대한 가치를 부정하고 사물의 본질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는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보여주었다. 뒤샹은 기성품을 이용한 작품이라는 뜻의 ‘레디메이드’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변기처럼 대량생산된 공산품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놓으면서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러한 행위는 전후 현대미술과 다다이즘 및 팝아트 작가와 개념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앤디워홀의 초기작 ‘캠벨 수프 깡통’은 당시 미국문화에 대한 논평으로 37점의 반복된 캠벨 수프통의 이미지는 무미건조한 산업사회의 허상을 비추고 있다. 한편 대량생산된 상품에 대한 무관심과 일회성 소비행태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워홀은 현대사회의 속성을 뒤샹의 언어로 재해석 하였다. 한편 레디메이드 개념은 작가가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고 아이디어만 제공해도 무방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다. 워홀이 실크스크린 제작을 조수에게 맡긴 것처럼 작가의 역할이 기능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영국의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들은 대부분 조수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며 허스트는 이러한 제작과정을 공개하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수 백 억대의 가격으로 경매시장에서 팔려나간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에서 조영남씨가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흐름이다”라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를 이야기 한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와 조영남 사건의 본질은 작가가 직접 작업하지 않았음을 공표했는가? 숨겼는가? 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이전의 화가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대작이 일상화된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에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미술은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미술운동이 일어난다. 당시 전위예술의 한 형태인 ‘다다이즘’이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다. 다다이스트들은 예술 활동의 자유분방함을 표방하고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하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콜라주, 앗상블라주, 포토몽타주 등 오브제를 이용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콜라주는 다다이스트들의 유력한 작품형태로 독일 다다이스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가 1924년 ‘메르츠’를 발표한 이후 많은 다다이스트들에 의해 차용되었다. 그가 발간한 예술잡지인 ‘메르츠’는 당시 아방가르드 작품 외에 폐품을 이용해 만든 그의 콜라주 작품을 실어 정크아트를 선도하였다. 슈비터스는 “미술가가 뱉어 놓은 모든 것은 예술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통해 뒤샹의 미술 개념을 확장 시켰다.

 미국 다다이즘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291갤러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진다. 만 레이와 피카비아는 작품 활동과 정기 간행물을 통해 기존의 미학규범을 바꾸려 노력하였으며 특히 피카비아는 미국과 유럽의 다다이즘을 연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레이요그래피’로 알려진 사진술을 창시한 만 레이는 못 박힌 다리미인 ‘선물’을 통해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인다. 앗상블라주 형태의 작품인 ‘선물’은 다리미 밑바닥에 14개의 구리 못을 붙여 놓았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재료의 조합으로 인해 만들어진 우연성과 초현실성이 결합된 이 작품 역시 레디메이드에서 확장된 하나의 예술적 경향이다.

뒤샹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했던 작가로는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다. 그는 1961년 뒤샹의 변기와 같은 발상으로 ‘예술가의 똥’이라는 작품을 만든다. 본인의 대변을 캔에 넣어 통조림으로 만든 것으로 예술가의 가식과 허영을 고발한 작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1억 7천만 원에 팔린다. “예술가의 정신활동이 창조된 물체보다 중요하다”고 한 다다이즘의 선구자 뒤샹은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며 예술가들로 하여금 창작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공헌하였다.

나영균 기자  siss477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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