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진정보 강좌
[사진미술 인문학] 풍경화의 탄생과 풍경사진
편집장 / 신현국

 회화에서 풍경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에도 풍경은 존재했지만 현실을 묘사하기보다 대부분 금과 보석 등 재료를 통해 초월적 세계가 그려졌다. 콘드라 비츠가 그린 ‘기적의 고기잡이’는 15세기경 실제 하는 풍경을 주제로 한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은 요한복음의 내용 중 하나로 베드로로 하여금 만선의 고기잡이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그림의 배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는 당시 콘드라 비치가 살았던 스위스의 몽블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적의 고기잡이’는 성서를 바탕으로 한 이콘화로 아직 중세적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16세기 들어 풍경이 그림의 주제로서 명확히 드러나는 풍경화가 나타난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 조르조네 다 카스텔프랑코(Girgio Barbare da Castelfranco)는 이탈리아 화가들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풍부한 색채로 대표작 ‘폭풍’을 그린다. ‘폭풍’은 번개 치는 도시의 전경을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 전형적인 풍경화로 풍부한 색채와 함께 윤곽선을 스푸마토기법으로 처리하여 다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풍부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을 시적인 그림이라하며 그러한 풍의 그림을 ‘조르조네스크’라고 한다.

‘기적의 고기잡이’, 콘드라 비츠

한편 이탈리아의 조르조네와 견주어 현실의 문제를 풍경화에 녹여낸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은 17세기 풍경화 전통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그의 화풍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유학 후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돌아오는 길에 매료된 일상과 풍경의 경이로움 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냥꾼의 귀가’는 그가 알프스 산을 넘으며 목격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설경이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은 회화에 눈이 묘사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풍경 속에 인물을 작게 묘사하고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풍자적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세밀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그의 그림은 외형적으로 평온한 일상을 묘사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중의 억압과 제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농민의 생활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 그를 ‘농민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사냥꾼의 귀가’, 피터 브뤼겔

사진발명 당시 회화는 사진으로 인해 많은 도전을 받아왔으며 초상사진과 같은 사실적 재현의 문제는 화가들의 한계를 드러내는 불편한 존재였다. 건축물 또는 풍경화에 있어서는 초상사진의 그것보다 지리적 한계로 인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19세기 중반 도로와 철도의 발달로 원거리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회화를 통해 알고 있던 풍경과 실경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화가들은 풍경화 밑그림을 그릴 때 사진의 이용을 당연히 여겼고 심지어 캔버스 위에 사진을 전사하여 덧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풍경화는 점차 풍경사진으로 대치되어갔다. 1842년경에 제작된 탈보트의 초기 풍경사진은 풍경화에 견주어 이미 사실성과 회화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1844년에는 ‘자연의 연필’이라는 최초의 사진집을 통해 자연과 도시의 풍경 사진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다루기 편하고 회화적 표현에서 뛰어났던 캘로타입은 당시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David Octavius Hill) 등 많은 풍경사진가들이 이용하였다.

'지정학적 사진', 티모시 오설리번

‘토포그래픽스’라고 하는 지정학적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풍경사진은 미 서부개척 당시 공병부대와 함께 실사를 나갔던 티모시 오설리번(Timothy O'sullivan)과 같은 사진가들에 의해 촬영된 사진으로 예술적 목적 이기보다 지형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촬영된 사진들이었다. 이후 철도가 건설되면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고용되고 이들을 통해 만들어진 서부의 광활한 풍경사진은 관광엽서로 만들어져 여행객을 서부로 인도하게 되었다. 풍경화와 함께 풍경사진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로 현재 가장 많이 다뤄지는 작품이다. 근대사진의 선구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의 후기작품 ‘이퀴벌런트’를 통해 풍경사진에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자연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1930년경 그의 영향을 받은 F64그룹의 일원인 안셀 아담스는 철저히 계획된 풍경사진으로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과 예술성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면서 사진과 회화의 결별을 공고히 했다.

니콜라스 닉슨

1950년대 현대사진의 선구자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는 신비주의적 풍경사진과 조형적 이미지로 1950년대 이후 현대사진을 이끌었다. 그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와 함께 현대사진을 주도한 인물이며, ‘아파추어(Aperture)’ 잡지를 통해 현대사진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의 풍경사진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공존하는 듯 철학적이며 종교적이다. 한편의 시를 읽는 듯한 그의 사진은 즉물적 상징효과를 통해 영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즉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우주의 실체를 드러내는 사진의 상황성을 표현하였다. 풍경사진은 1970년대 들어 존 팔(John Pal)과 니콜라스 닉슨(Nicholas Nixon) 등 뉴 토포그래픽스 사진가들에 의해 새로운 풍경이 제시된다. 경제개발로 훼손된 풍경을 사회적 풍경으로 규정하고 인간에 의해 훼손된 풍경에 주목한다. 그들의 사진은 자연을 촬영한 듯 보이지만 산업화에 대한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아름다운 한 장의 풍경사진 속에 남겨진 오염된 강과 산 그리고 지평선 너머의 공장 굴뚝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들의 사진적 접근 방식은 16세기 최초의 풍경화를 그린 브뤼겔의 접근법과 유사하다.

‘이카로스의 추락하는 날개’, 피터 브뤼겔

‘이카로스의 추락하는 날개’를 보면 자신의 생업에 열중인 무관심한 농부의 모습 외에 별 다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모습이라고는 추락 후 물에 거의 잠긴 날개의 일부분만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의 그림 전체에서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통해 주제를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관찰자의 마음이 그림 속에 들어가 있을 때 비로소 주제를 보여준다. 풍경사진의 신비주의적 표현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우울을 표현한 현대작가로는 김아타와 히로시 스키모토 그리고 우리나리의 솔섬을 촬영하여 더욱 유명해진 마이클 케나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저속셔터를 이용한 초현실적 이미지를 통해 회화에서만 가능했던 몽환적 느낌을 보여준다. 이들은 대형포멧의 카메라를 주로 이용하여 저속의 미학을 극대화했다. 이들의 사진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진을 통해 내면을 통찰하는 감성적 풍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나타난 결정적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라 정의했다. 즉 복제품인 사진은 아우라의 상실로 인해 현장의 신비로움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풍경사진은  먼 곳에서 감상할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이로움만으로도 풍경사진이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나영균 기자  siss4779@nate.com

<저작권자 © 한국사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영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