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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발명과 사실주의[사진미술 인문학]
귀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시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다시 르네상스로 돌아가는 듯 신고전주의가 유행하지만 혁명의 실패로 인한 체념과 환멸은 미술에서 개인적 감정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를 탄생시킨다. 이 시기에 새로운 표현매체인 사진이 탄생하면서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미술에서도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게 된다.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는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천사를 데려오면 그릴 것이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실주의는 사실성과 현실성을 강조하고 아카데믹한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오르낭의 매장’ 역사화는 쿠르베의 사실적 화풍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전의 회화는 종교적, 신화적, 역사적 주제를 다룬데 반해 쿠르베는 평범한 사회적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자신의 고향 오르낭에서 목격한 주민의 장례식을 모티브로 제작한 이 작품은 당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작가의 상상력이 부재하고 고상하지 못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게다가 역사화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역사화라고 하면 왕족과 귀족의 생활을 다룬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그림은 마니에리스모 시대인 16세기 후반, 엘 그레코(El Greco)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과 비교되기도 하였다.

쿠르베는 대작으로 제작된 이 그림이 살롱에서 거부당하자 독자 전시회를 통해 전시를 하였다. 쿠르베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생활사진을 지속적으로 접해왔던 쿠르베가 사진의 영향을 받아왔음은 배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쿠르베는 사진발명 이후의 세대이며 사진의 영향 속에서 미술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사진의 사실성에 비해 지극히 이상화된 기존의 미술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삶과 밀접한 사진을 통해 그는 진실을 볼 수 있었으며 미술도 그러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사실주의라고 하면 형태의 사실성을 생각하겠지만, 사실주의는 형태의 사실보다 진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향으로 사실주의는 후에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도미에, '삼등열차'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휴머니즘을 그림으로 표현한 리얼리즘 작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는 그의 대표작 ‘삼등열차’를 통해 지치고 힘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애환을 그림 속에 담았다. 도미에는 풍자 만화가로도 활동하였으며 사진가 나다르와 각별한 사이였다. 그는 나다르의 사진실을 자주 드나들며 사진이 회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인식한다. 당시 많은 화가들처럼 도미에도 사진을 보고 드로잉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바르비종 화파로 사실주의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JF-Millet)는 농촌을 주제로 소박한 농민의 삶을 담담하고 평화롭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밀레는 목가적 농촌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의 대표작 ‘이삭 줍는 사람들’은 더 이상 먹을 것 없는 농촌의 비극을 담은 비극적인 그림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때 사회주의자로 취급받았다.

존 밀레이, '오필리아'

사실주의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러시아로 퍼져나갔다. 영국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통해 대상을 극도로 이상화한 르네상스 미술에 반기를 든 라파엘전파가 사실주의를 표방하며 나타났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존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가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작품 ‘오필리어’는 많은 현대화가, 사진가들이 패러디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로는 혁명기 러시아의 사회상을 그린 일리아 레핀(Iiya Yefimovich Repin)을 들 수 있다. 그의 그림 역시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혁명가와 그의 가족 그리고 민중의 삶을 담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혁명기 러시아 해방전사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렇듯 사실주의 화가들은 형식의 사실성 보다 세상의 진실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일리아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한편 사진의 사실적 형태를 모방한 세밀화는 일부 화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그려졌으며 19세기 말에는 오히려 사진과 회화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실적 회화가 성행하였다. 그들은 사진위에 덧칠한 풍경이나 누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지만 형태의 사실성만을 내세운 회화는 곧 가치를 잃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진실을 알리는 도구로서 사진의 역할이 커지면서 포토리얼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사실주의는 사진과 같이 세상을 모사할 뿐 작가의 상상력이 부재한 저급한 미술로 취급받았다. 사진이 미술가들을 게으르게 만들었으며 화가들의 정신적인 면을 무디게 만들어 결국 미술가들을 타락시켰다고 하였다. 사진이 저급한 사실주의 회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이 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화가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을 새롭게 해주었으며 시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은 미술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였고 사진을 통해 보다 경이로운 예술적 사고를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세기 이후 사진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던 사실적 회화가 다시 부활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1960년대 극 사실주의라고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이 나타나면서 리얼리즘 회화는 현대미술로 재탄생된다.

신현국 기자  nss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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