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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사진의 발명[사진미술 이야기]
1832년 6월 항쟁 영화 '레미제라블' 중

 19세기 초 프랑스는 1789년부터 시작된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찍이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고 있는 영국의 독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퇴진 후 샤를10세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지만 1830사회적 혁명의 성과로 부르봉왕조의 몰락과 함께 자유주의적 입헌왕정을 인정한 루이 필리프1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 사건을 기록한 그림이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목적은 공화정을 수립하는 것이었으며 공화파의 끊임없는 투쟁이 계속되던 가운데 공화파 장군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1832년 6월 혁명이 발발한다. 6월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다.

이 사건의 배경이 바로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레미제라블’에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혁명의 실패는 낭만파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최초의 모더니즘 운동인 리얼리즘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들라크루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지속적인 사회적 불안은 시민의식을 더욱 일깨우게 되었고 결국엔 아카데미즘에 대한 거부와 현실을 직시하고자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실적이고 실용적인 과학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으며 산업혁명의 재촉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발명을 적극 권장하게 되었다. 사진 역시 많은 발명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소수의 발명가들이 사진발명을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그러던 중 1926년 니엡스 형제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다소 불완전한 사진발명과 다게르의 사업적 수완 그리고 프랑수아 아라고의 적극적인 설득이 결실을 보게 되어 1839년 8월 19일 사진이 공식 발명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의 발명’ 보다 ‘사진의 발견’이 올바른 표현이다. 화학물질은 통상적으로 ‘발견’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사진 역시 발명보다 발견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발명을 권장한 사회적 분위기는 발견자 보다 발명가에게 연금이 수여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렇게 부를 위한 노력과 사회적 요구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신현국 기자  nss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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