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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석의 잡학사전2
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장 / 박주석 교수

지난 소식에 이어 ‘사진으로 돈을 벌려면’이란 칼럼에서 소개한 1969년도 당시 기사의 내용을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는 권고는 ‘수염을 길러라’는 내용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여성 사진가가 거의 없던 남자들이 주로였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웃어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은 수염을 정성스럽고 보기 좋게 잘 기르면 매우 점잖아 보이고 클라이언트의 눈에 잘 띠니까 손님을 끌기에 좋다는 말입니다. 일정하게 나이가 들어 흰 수염을 잘 가꾸면 대부분 사람들이 경외심과 존경을 표하게 된다고 단언합니다. 여기에 더해 작가 스스로의 행동도 자연히 의젓해진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요즘도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사진가의 외모나 복장 등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대중적 인식하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예술적 분위기를 풍기는 일은 여전히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에 더해 일정한 단정함과 세련됨을 갖춘다면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으니까요. 수염이 그 요소라는 사실이 지금과는 다른 점입니다. 헌데 이 권고 말미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나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수염이라도 염소수염처럼 생기면 웃음 꺼리가 되니까”라며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여섯 번째로는 ‘자기를 높여라’라는 권고입니다. 윗지(Weegee, 1899~1968)라는 포토저널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열네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다음 여러 신문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한 포토저널리즘의 전성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작가 중 한명입니다.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부르고 기억하기 쉽게 Weegee로 개명해서 사용한 사람입니다. 기사에서는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작가의 사례를 들어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태도를 권합니다.

‘윗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진가 윗지”라고 새긴 고무도장을 만들어 갖고 다니며 자기 이름을 써야하는 곳에 꼭 찍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품이나 실력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고 자칫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지만, ‘윗지’는 당당히 말끝마다 자기는 세계 최고의 사진가라고 스스로를 높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유명세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세계적인 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또한 입국심사 때 세관직원이 갖고 오는 것 있냐고 물으면 “나는 내 천재적인 재능밖에 가진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행동을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사례라고 덧붙입니다.

일곱 번째는 요즘 작가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전시회를 열자’라는 권고입니다. 하지만 1969년 당시 우리나라 사진가들은 출판이나 잡지 게재를 더 선호했고, 그것이 가장 사진다운 발표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권고라고 보입니다. 폴 카포니그로(Paul Caponigro, 1932~ )를 예로 들었는데, 그를 비즈니스를 하는 작가가 아닌 순수한 예술가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오직 작품을 만드는 일에만 열중하지만 워낙 전시를 자주 열고 또 같은 전시를 미국 내 여러 곳에서 동시에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각종 매체에 자주 소개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유명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당시 사진에 대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재밌는 말은 전시를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인 출판”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출판을 하면 복제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원래의 작품이 손상되지만, 전시를 하면 사람들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데 더 열성을 기울이게 된다고 합니다. 실력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사진의 발표가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상업 사진가들도 유명해지고 성공하려면 전시회를 자주 열라고 권고합니다. “전시란 반드시 화랑이나 특별한 전시장소를 택할 필요가 없고, 광고 대리인점이나 광고관계자들이 출입하는 다방의 벽에 걸어놓아도 된다”며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여덟 번째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라”는 항목입니다. 이 또한 스스로를 전설적인 인물의 반열에 들게 하도록 하는 자가발전 전략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1955년 뉴욕 MOMA에서 열린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을 기획한 나름 사진계의 전설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879~1973)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접 인용합니다. “재주와 소탈한 성품 및 사회단체를 이용하는 것 등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한 동안 포츄레이트를 500달러씩에 찍었더니 너무 손님이 많아서 쉴 사이가 없기 때문에 손님이 줄기를 바라면서 사진 값을 1000달러로 올렸더니 손님이 더 많아져서 골치를 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 자신이 만들어서 퍼트린 이야기 같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스스로를 부풀리고 적절하게 소문을 내면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것이지요. 요즘같이 정보가 오픈되어 있는 시대에는 당연히 가당치 않은 방법이긴 합니다.

또 한 예는 얼마 전 타계한 6.25전쟁 사진으로 유명했던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David Douglas Duncan, 1916~2018)입니다. 인상이 고약하기로 유명했지만, 누구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많이 돌아다녔고,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 경력이 큰 권위가 되어 어떤 출판사나 매스컴도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던컨의 경우는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와 장사에 능한 양쪽의 재주를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얻게 된 명성인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그는 저작권료나 사진 사용료 등으로 사회의 각계각층으로 부터 엄청난 돈을 긁어 들인 능력을 발휘했다고 전합니다.

지금과는 사진에 관한 정의와 개념이 달랐고, 시대적 환경도 전혀 달랐던 시대의 기사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사람 사는 일의 본질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과거의 사진을 이해하고자 하면 그 시대 사진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아는 일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신현국 기자  nss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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