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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즘을 거부한 인상파[사진미술 인문학]
모네, '일출 인상'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는 사실적 재현이라는 문제를 사진에 양보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일부 화가들은 아카데미 적 미술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화실을 나와 자연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에두아르 마네(Eduard Manet)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등 신진 미술가그룹은 기성세대의 도식화된 화법과 고상한 주제를 거부하고 귀족의 타락한 일상을 표현하는가 하면, 천박한 여인의 나신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다.

한편 사진을 밑그림으로 많이 이용했던 드가는 사진의 스냅 샷 같은 자연스런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회화는 현실을 반영해야한다’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담아냈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당시 또 다른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살롱 전에 전시된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을 본 모네는 마네의 작품에 충격을 받고 그의 작품세계에 동화된다. 그는 오귀스트 르느와르(Auguste Renoir) 등 그의 동료들과 함께 자연으로 나아가 자연을 관찰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현실적인 방법으로 화폭에 담아내고자 한다.

마네, '풀밭위의 점심'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는 화실에서 그려졌던 관념적 자연과는 다른, 빛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현실적 풍경을 접하게 된다. 그들은 빛의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형태에 주목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빛의 변화를 포착한다.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의 그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빛에 의해 다르게 표현된 사물을 인상파화가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준다.

신인상파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면 빛의 입자설을 인용한 점묘법을 통해 필름의 입자처럼 거친 톤으로 한가로운 오후의 공원을 묘사하였다. 이처럼 인상파화가들은 빛의 인상에 기초하여 사물을 파악하려 노력하였다. 인상파라고 하는 말은 모네와 그의 동료들이 쿠르베가 살롱 전 참가를 거부당한 후 고심 끝에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던 것처럼, 그들도 독자 전시회를 준비하였고, 전시회 장소로 나다르의 사진실을 이용하였다.

모네, '루앙 대성당'

하지만 그들의 첫 번째 전시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했을 뿐더러 ‘일출, 인상’이라는 그림의 제목을 보고 비하한 기자에 의해 ‘인상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첫 번째 전시회는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덕분에 ‘인상파’라는 새로운 화파를 형성하며 꾸준히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롱전에 입성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으며 그만큼 수입도 변변치 않았다.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은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고흐처럼 생전에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던 화가도 있었다.

인상파의 탄생은 당시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동안 화가들의 작업은 아틀리에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거나, 야외 활동이라면 기껏해야 스케치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이 먼 야외에 나가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전 과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철도의 발전으로 마차가 없어도 먼 곳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당시 튜브 물감의 개발로 화가들은 시간과 장소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배경보다도 그들이 실험적 화풍에 도전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오랜 시간 미술계를 지배해온 전통적인 회화기법에 대한 반감이다.

신현국 기자  nss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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