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예술 공모/촬영/전시
역사를 몸으로 쓰다 展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7. 09. 22.~2018. 01. 21

우리의 몸은 나와 타자가 관계를 맺는 만남의 장소이며 세계의 다양한 상황들과 만나는 접촉 지대이다. 마음과 정신을 담은 그릇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버리는 물질이기도 하다. 동시에 몸은 과거의 기억이 각인된 '기억의 저장고'이자, 권력·자본·지식 등 현실의 생명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적 장소'이다. 몸은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전반에 속하는 실재이므로 1960년대 이후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 속에 삶의 영역을 끌어들이고 삶과 예술을 통합하고자 할 때, 신체를 하나의 예술 매체로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 『역사를 몸으로 쓰다』는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예술 매체로서의 신체와 몸짓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역사·문화적 맥락과 관심을 어떻게 드러내 왔는가에 초점을 둔 국제기획전이다. 국내외 총 38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몸짓이 우리 삶의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과 예술 태도에 따라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1부 '집단 기억과 문화를 퍼포밍하다'는 특정 공동체의 역사적인 집단기억과 문화적 유산을 몸짓으로 재구성한 퍼포먼스 작업을 포괄한다. "몸은 기억한다."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특정 집단이 간직한 역사적·문화적 집단 기억은 몸에 겹겹이 쌓여 퍼포먼스 예술가들의 작업의 원천이 된다. 전시작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발칸 연애 서사시」, 장 후안의 「가계도」 등은 예술가가 몸담은 자국의 문화적 기억을 담아낸 몸짓이다. 특히 전쟁, 죽음, 상실과 같은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적 기억은 오노 요코의 「컷 피스」 등에서처럼 고통 받는 신체의 증후로서 반복적으로 재상연된다. 동시에 기억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변형될 수도, 망각될 수도, 재구성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일련의 아시아 작가들은 자국의 근·현대사에서 도출된 집단 기억을 퍼포먼스로 재구성하며 역사의 흐름에서 삭제되고 변형된 기억을 소환하고 '사회적 망각(social amnesia)'을 건져 올린다. ● 역사를 퍼포밍하는 방식 중 하나는 바로 집단 행동(collective actions)이다. 1960-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 작가들과 일본의 제로지겐, 하이레드센터 등 당대 전위예술집단은 집단 행동을 통해 당대 사회·정치적 상황에 신체로 반응해 왔다. 본 전시에서는 그들의 퍼포먼스 기록물을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한다. 집단 행동이 아니더라도 예술가 1인의 최소한의 몸짓은 권위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 될 수 있다. 신문을 자르는 행위(성능경), 텐안먼 광장에서 숨을 쉬는 행위(송동), 도자기 유물을 파괴하는 몸짓(아이 웨이웨이) 등은 거대한 제도와 권력 앞에서 최소한의 저항으로 마주하던 예술가의 몸짓이다.

2부 '일상의 몸짓, 사회적 안무'는 평범한 일상의 몸짓을 예술의 문맥으로 끌어오면서 현실과 삶의 문제를 역설하였던 1960년대 이후 퍼포먼스 작업들을 '사회적 안무'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청소하는 몸짓을 통해 유토피아를 향한 국가적 열망을 풍자하는 것(하이레드센터), 걷는 행위를 반복하며 소수자의 생존과 노동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프란시스 알리스), 먹는 행위를 반복하며 삶의 차원을 되새김질하는 것(이건용), 훈련된 신체의 몸짓으로 식민과 개발에 대한 저항을 드러내는 것(알로라&칼자디야) 등은 일상 행위를 퍼포먼스로 끌어오면서 그러한 행위를 작동시키는 권력과 제도, 사회적 기제 등을 드러내는 몸짓들이다. 이때 일상의 몸짓은 무의미한 단순 반복행위가 아니라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몸짓 그 자체에 정치성을 내재한 '사회적 안무'가 된다.

3부 '공동체를 퍼포밍하다'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전지구화의 위기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몸으로 재상연한 작품들과 함께, 공동체 일원과의 협업과 대화에 기반하여 몸과 몸의 친밀한 만남을 통해 일시적인 공동체를 실험한 집단 퍼포먼스 작업들을 소개한다. 전자는 '공동체의 상실'이 어떻게 '몸'을 경유하며 작동하는가를 바라보는 것이고, 후자는 몸과 몸의 만남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이 시도하는 '몸으로 역사쓰기'는 언어로 역사쓰기와 다르다. 몸짓으로 역사적 사건을 '재연(reenacting)'하는 것은 언어로 역사를 '서술(describing)'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로 역사 쓰기가 역사를 재현하거나 명증하려는 정확한 목적성에 있다면, 몸짓은 언어가 가둬놓은 틀을 뚫고 나와 언어가 기입한 역사를 탈 맥락화한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에서의 몸짓은 언어가 기입하지 못한 역사, 언어로 소환할 수 없는 역사, 언어가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와 부재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이때 '역사를 몸으로 쓰는 것'은 일종의 '대안적이고 저항적인 역사 쓰기'가 될 수 있다.

신현국 기자  nssetter@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사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현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